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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래서 이 책 읽는데..
by 혜란 at 08/05 난 운전학원 댕길때 앞 차.. by 박재경 at 04/05 가서 잼있었냐? 나도 그런.. by 아돌 at 05/04 음 제 친구가... 했던 .. by cecil at 05/02 |
영화 해설 여러분들 중 브라질이란 나라를 모르는 사람은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축구 때문인지 몰라도 브라질 이란 나라는 모두들 알고 있다. 좀더 아는 사람은 남미에서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정도. 그럼 여러분은 브라질 영화를 본적이 있는가? 아마 대부분 없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중앙역>은 브라질 영화다. 광란의 리우축제와 축구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브라질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우리나라에 수입돼서, 번듯한 개봉관에 걸렸다. 곧장 비디오 가게로 직행하지 않고 말이다. 이것만해도 사건이라면 사건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그랑프리), 은곰상(여우 주연상),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같은 여러 상의 도움 때문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수상경력 조차도 하나의 대단한 사건일 지도 모른다. 아직도 빈부격차가 심하며, 정치는 안정되지 못하였고, 경제도 어렵고 축구 하나만 잘하는 줄 알았던 그 브라질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런 상까지 받은 것일까? Scene#1 중앙역 / 군중 / 개인 ![]() <중앙역>의 출발점은 제목 그대로 리오 데 자네이로의 중앙역인 리오역이다.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의미없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들에게는 제 각자만의 사연이 있다. 그런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편지를 대필해주며 먹고사는 아줌마 도라(페르난다 몬테네그로 분)가 있다. 저마다의 절절하며 애틋하고 기쁘고 숭고한 사연을 도라앞에서 고백성사하듯 읊는 사람들과 역을 빠른 속도로 지나쳐가는 기차에서 비어져나온 군중들이 교차되는 이 영화의 도입부는 꽤나 의미심장하다. 도입부에서 나오는 이러한 장면은 감독이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군중과 개인을 나타내고 있다. Scene#2 편지 / TV ![]()
멀리 있는 아빠에게 보낼 편지를 도라에게 불러주고 역을 떠나던 길에 엄마를 교통사고로 잃는 소년 조슈아(비니시우스 드 올리비라 분). 졸지에 집도 갈곳도 없게된 조슈아에게 잡을 만한 지푸라기란 사기꾼 같아만 보이는 편지 아줌마인 도라일 뿐이다. 도라의 입장에서도 조슈아는 의심많으며 고집센 한 꼬맹이 일 뿐이다. 도라에게는 조슈아의 편지는 하루동안 대필해준 수많은 편지중 하나이지만 어머니를 잃고서 갈 곳 없게된 조슈아에게는 아버지와 자신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수단이자 매개체이다. 또 이것은 아무 상관없던 도라와 조슈아를 연결해주는 고리이기도 하다. 감독은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은 무관심하게 지나쳐가지만 ‘편지’라는 매개체로 그런 사람들을 이어주고 있다. 결국 도라의 동정심은 조슈에를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가 입양 알선소(사실은 아이들을 죽여 장기를 팔아먹는 곳)으로 넘긴다. 그것으로 자신의 고물난 흑백 TV대신 리모콘이 달린 칼라 TV로 자신의 TV를 바꾼다. 도라에게는 의미없는 편지보다는 현실적으로 리모콘이 달린 칼라 TV가 소중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에는 입양 알선소의 진실을 알고서 고민 끝에 현실적인 TV보다는 아이를 택하게 된다. 감독은 여기서, 무관심한 수많은 사람들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편지’를 택한 것이다. Scene#3 길 ![]()
도라는 결국 조슈아의 아버지에게 데려다 주기 위하여 길을 떠나게 된다. 그길은 도라에게는 삶의 터젼을 버리고 떠나는 머나먼 길이지만 중간에 태워다준 트럭 운전사가 ‘나는 길과 결혼했다’는 말에서 감독은 단순히 그런 단순한 의미의 길을 의미하고 있지 않다. 길 자체는 과정이자 목적이다. 조슈아의 도라는 <파리, 텍사스>의 트래비스와 헌터 부자처럼 길을 통해서 혈육을 찾아나선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그동안 숨어있던 솔직한 자신을 찾아낸다. 조슈아의 도라는 친해질 듯 하면서도 싸우고, 토닥거리는 모습은 마치 현실에서의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길은 그들에게 혈육을 찾는 목적뿐 아니라 과정이다. Scene#4 자연/신앙 ![]()
영화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연과 신앙이다. 그들이 조슈아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떠나는 여행동안 만나는 곳은 광활한 평원. 사막 같은 그 끝도 없는 평원한가운데 십자가가 서있다. 그 뿐만 아니다. 중간에 태워준 트럭기사의 차 뒤에 새겨진 기독교적인 멘트, 앞에 달려있는 성모상. 그리고 조슈아의 아버지의 이름인 Jesus(제수스) – 원래의 어원은 예수님이다. – 등은 영화속에서 수많은 기독교적인 상황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종교 영화인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영화에서 기독교란 하층민들의 삶 속에서 희망을 의미한다. 각박하고 먹고 살기 힘들지만 그들이 하느님에게 의지하는 것은 단순한 그들의 삶을 개선하려고 하는 희망을 표출 할 뿐이다. 영화는 그런 모습을 사심없이 다큐멘터리적인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Scene#5 가족/사진 ![]()
여러 번의 발걸음 끝에 조슈아의 도라는 조슈아의 아버지의 집을 찾아낸다. 찾아낸 집에서 조슈아의 아버지는 조슈아의 죽은 어머님을 찾아서 이미 떠나버렸지만 그 집에는 조슈아의 두 형이 살고 있다. 조슈아를 데려다 준 도라는 조슈아의 가족사진이 놓여진 탁자위에 조슈아의 어머니가 쓴 편지와 아버지가 쓴 두 편지를 두고서 떠난다. 도라는 결국 실질적인 자신의 리모컨 칼라 TV를 버리고 조슈아를 택하였고 그것은 한 소년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뿐 아니라 조슈아의 아버지를 찾기 위하여 여행한 대자연과 길 속에서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영화속에서 한 매표원이 말한 ‘세상끝’에서 도라는 한 소년의 인생과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 한 것이다. 그리고 도라가 가족사진 앞에 두고간 편지를 통해서 도라는 자신이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했기에 떠나는 것이다. 영화속에서 이것은 슬픈 이별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 즉 또 다른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각박한 현실속에서의 ‘희망과 구원’을 뜻 하는 것일 것이다. 마지막 ![]()
이 영화는 도라라는 어른과 죠슈아라는 7살짜리 꼬마 애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처음에 어머니를 잃은 조슈아는 혼자서는 먹을 돈도, 집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다. 오히려 도라가 없었으면 굶어 죽거나 인신매매당에 잡혀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슈아의 아버지를 찾아서 긴 여행을 떠나면서 오히려 도라는 조슈아의 내면에서 자기 자신의 본 모습을 찾는다. 그동안 잊혀진 자신의 모습 말이다. 어렸을 때 간직하던 순수한 모습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힘든 현실속에서 의심과 시기만이 남아있던 도라에게 아직 순수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조슈아는 무기력한 아이가 아닌 하나의 배움의 스승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도라의 모습처럼 남을 헐뜯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살아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도라가 조슈아에게 ‘아버지는 너를 잊고 있을거야’ 또는 아버지는 이미 어디론가 떠나버렸을 거야’ 라고 말하면서 시기하고 조슈아의 순수한 동심을 질투하지만 마지막에 조슈아의 집에서 보고 느낀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감독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해보며, 우리 삶에서 한번 이런 것을 돌아볼 여유를 가져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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